서론: 우리는 모두 ‘이주민’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주민 선교사님, 사역자님, 그리고 김해이주민선교 연합기도회에 함께하신 동역자 여러분. 오늘 이 거룩한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는 하나의 분명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길을 떠난 ‘이주민’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분은 타국에서 이 땅으로, 어떤 분은 안락한 삶의 자리에서 이 치열한 사역의 현장으로, 각자의 삶의 자리를 떠나 이곳 김해에서 이주민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본질적으로, 우리 모두는 이 땅이라는 잠시 머무는 정거장을 떠나 영원한 본향,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영적인 이주민’입니다.
오늘 저는 ‘이주하시는 하나님, 이주하는 우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며, 이주민 사역의 한가운데서 때로는 지치고 외로운 싸움을 싸우고 계신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오는 위로와 용기, 그리고 사역의 열정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본론 1부: 하나님은 스스로 ‘이주’하신 분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이주: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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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첫 번째 이주는 사랑을 주기 위한 ‘보내심’이었습니다. 영원 전부터 완전하고 충만하신 성부 하나님은 그 사랑을 우리와 나누기 위해, 아무것도 없던 텅 빈 혼돈의 공간으로 친히 찾아오셨습니다. 당신의 영광과 생명, 질서와 아름다움을 이 세상에 ‘이주’시키시어 빛을 만드시고, 우리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창조는 하나님의 영광이 텅 빈 곳으로 이주하여 모든 것을 새롭게 한 사건입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거룩한 이주의 첫 열매입니다.
성자 예수님의 이주: ‘성육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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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두 번째 이주는 우리를 살리기 위한 ‘낮아지심’이었습니다. 인류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되었을 때, 성자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스러운 보좌를 버리고 이 땅의 가장 낮고 천한 곳, 말구유로 ‘이주’해 오셨습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시지만, 이 땅에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실 만큼 완벽한 이주자로 사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결코 패배자의 삶을 사시지 않았습니다. 나그네로 사셨지만, 가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의 권세와 능력을 선포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자신의 정체성이 이 땅의 나그네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왕’이심을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주는 가장 위대한 희생의 이주이자, 승리의 이주였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이주: ‘내주(內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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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세 번째 이주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기 위한 ‘찾아오심’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다시 이주(승천)하신 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약속대로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 마음속에 보내주셨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우리 각자의 심령 가운데로 ‘이주’하여 오셔서, 지금도 우리 안에 집을 짓고 살고 계십니다. 우리를 위로하고, 가르치고,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하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스스로 나그네가 되시고, 이주자가 되시어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이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론 2부: 우리는 ‘영적 이주민’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히브리서 11:13
믿음의 조상들은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았지만, 그들의 마음과 시선은 늘 더 나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것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땅의 삶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았고, 스스로를 ‘외국인’과 ‘나그네’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영적 이주민’의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김해 시민으로 살아가지만, 우리의 영적인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이 땅은 우리가 잠시 거쳐 가는 정거장일 뿐, 우리의 영원한 집은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입니다. 이 사실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심장으로 깨닫고 우리의 존재에 깊이 각인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의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하며, 천국 시민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결론: 이주민의 경쟁력, 세상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영적 이주민’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능력과 비전을 가져야 할까요? 저는 오늘 마지막으로 ‘이주민의 경쟁력’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 사역을 감당하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나누고 싶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주민을 연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만 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이주민은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놀라운 잠재력과 경쟁력을 가진 존재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주민은 두 개의 세상을 동시에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이주민 리더들
인공지능 시대를 연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9살에 대만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언어장벽과 극심한 인종차별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고통 속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눈과 강인한 회복탄력성을 길렀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부활시킨 **사티아 나델라**는 인도 출신 이민자로서,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공감의 능력’으로 닫혀있던 제국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역시 인도에서 온 이주민으로서,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을 풀어내는 통합적 사고로 세계 최대 기업을 이끌고 있습니다.
어디 기업뿐입니까? 10년 넘게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인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며 세계적인 레전드의 반열에 오른 **손흥민 선수**를 보십시오. 그는 치열한 경쟁과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의 놀라운 실력뿐만 아니라, 동료를 먼저 생각하고 팀을 위해 헌신하는 그의 인성은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더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세계적인 선수라는 정체성을 모두 가지고, 두 세계를 훌륭하게 연결하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습니다.
동역자 여러분, 분명히 보십시오. 그들이 겪었던 외로움과 차별, 문화적 충격과 언어의 장벽, 그 모든 고난이 역설적으로 그들을 성공하게 만든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이주의 고통이 그들을 더 강하게, 더 지혜롭게, 더 창의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 공감하며 함께 세워가는 것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비전이자 사명입니다. 우리가 ‘영적 이주민’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때, 우리 역시 이들처럼 세상을 이기는 강력한 영적 경쟁력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갑니다. **세상의 문법을 알지만 하늘의 문법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세상의 필요를 알지만 하늘의 능력으로 그 필요를 채웁니다.** 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영적 연결자’의 삶,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경쟁력입니다.
바로 이 ‘영적 이주민’이라는 우리의 정체성이, 우리가 섬기는 이주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감의 통로가 됩니다. 우리는 돕는 자와 도움받는 자의 관계를 넘어, 같은 길을 걷는 ‘동료 순례자’로서 그들의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당신처럼 나그네입니다. 우리도 하늘 본향을 향해 가는 영적 이주민입니다.” 이 공감대가 형성될 때, 우리는 비로소 그들과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저 천국에서 누릴 하나님의 한 가족 됨을 이 땅에서 미리 살아가는 원동력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사역 현장에서 만나는 이주민들, 특히 다음 세대 아이들을 바로 이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가진 이중문화의 배경이 얼마나 큰 경쟁력인지를 가르치고, 스스로 경험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귀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여, 위축된 마음을 펴고 당당하게 자신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누리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세우는 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머리 둘 곳 없는 이주자로 사셨지만 결코 패배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사역의 현장에서 겪는 고난과 결핍에 주저앉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부족한 현실이 아니라, 모든 것을 이기신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이기 때문입니다.